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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문화예술-춘천연극제] ‘춘천연극제’에 대한 소고(小考) Ⅰ

by 피터와 나무늘보 2022. 5. 31.

그 시절, 서울 명동을 추억하며...


 

내가 처음 본 연극은 ‘에쿠우스(馬, EQUUS)’였다.

1970년대 후반, 서울 명동에 있는 극장이었는데 아마 ‘떼아뜨르 추’가 아니었나 싶다.

‘에쿠우스’는 말들의 눈을 쇠꼬챙이로 찔러 멀게 한 소년 앨런의 범죄 실화를 소재로 한 작품으로, 1973년 영국에서 초연된 이래 세계 각국에서 꾸준히 공연된 화제작이었다. 당시 소년 앨런 역을 맡은 이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폐회식 총감독을 맡았던 송승환 씨로, 그때 앳된 그의 모습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때 그 공연을 얼마나 인상 깊게 보았던지 에피소드가 하나 떠오른다.

친구들과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서오릉으로 놀러가서 ‘에쿠우스’의 한 장면을 심각하고 진지하게 흉내 냈던 것.

그 시절엔 그래도 괜찮았다. 뜨거운 청춘이었으니...

 

 

당시 명동은 한국 문화의 중심지였다.

그런데 명동에 있던 국립극장이 1975년 장충동으로 이사 갔다. 

문화 중심지로서 쇠약의 길로 들어선 것 아니냐는 얘기도 있었다.

하지만 연극무대는 다양성으로 이를 극복하고자 했다.

당시 명동에는 떼아뜨르 추, 엘칸토 극장, 3·1로 창고극장 등이 있었다.

 

'빨간 피터의 고백'에서 열연하던 배우 추송웅이 포스터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 - 한국일보 자료사진

 

명동 연극계에서 가장 화제가 됐던 인물은 고 추송웅 씨였다.

개성적인 연기와 성격 창조에 힘입어 1977년 3·1로 창고극장에서 공연한 모노드라마 ‘빨간 피터의 고백’은 최대의 화제작이 되었고, 일본 공연까지 했을 정도다. 이 작품으로 한동안 모노드라마 붐이 불기도 했다.

 

1970년대의 명동거리. 젊음으로 활기가 넘쳤다.  - 사진; 홍순태

 

하지만 고도성장기에 접어든 대한민국은 모든 것이 빠르게 변했다.

명동성당이 민주화의 성지가 되고, 예술보다는 정치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졌다.

이때 명동은 백화점거리로 명성을 날리게 된다. 당시 명동에는 제일백화점과 시라노백화점, 신세계백화점, 시대백화점, 미도파백화점, 코스모스백화점이 있었고, 70년대 말에 롯데백화점이 등장했다.

그러나 '강남'이 등장하면서 명동의 백화점 전성시대도 서서히 저물기 시작했다.

 

명동에 있던 국립극장. 1975년 장충동으로 이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명동의 국립극장과 한일관, 명동칼국수의 추억을 잊지 못한다.

돌아가신 아버님이 남대문시장에서 사주셨던 소고기덮밥을 평생 잊지 못하는 것처럼, 내가 직접 사 먹은 명동칼국수의 맛도 잊지 못한다. 지금도 ‘명동칼국수’라면 먼 길 마다하지 않고 가는 이유다.

 

 

그렇다. 음식은 추억을 찾는 것이다.

칼국수에 한두 개 넣어주는 명동교자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가끔은 그조차 그리울 때가 있다.

연극 얘기하다가 엉뚱하게...

 


 

 

지금도 기억하는 나의 두 번째 연극이 있다.

현재 서울시의회(구 국회의사당) 뒤편에 있는 극장에서 본 ‘고도를 기다리며’이다.

내용은 두 사람이 언제 올지, 누구인지도 모르는 ‘고도’라는 사람을 무작정 기다린다는 것.

어쩌면 너무 간결해서 이게 어떻게 이야기가 된다는 것인지 의아스러운데, ‘우리는 살면서 스스로도 모르는 무언가를 기다린다’는 의미로 보면 이해가 되는 면도 있다. 호불호 얘긴 생략하고...

 

아무튼 당시에는 금성 카세트라디오가 인기였는데, 공연 내용을 녹음하기 위해 백팩만한 카세트라디오를 공연장에 가져가기도 했다. 녹음이 얼마나 잘 되었는지 한동안 소니 워크맨이 부럽지 않을 정도였다.

 


 

연극과 병행해서 한동안 클래식을 알아야겠다며 고전음악실을 전전하던 때도 있었다.

까까머리 중학생 때 단행본으로 나온 까뮈의 ‘이방인’(첫 문장이 ‘오늘 엄마가 죽었다’로 시작되어 놀랐다)이나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와 ‘부활’ 등을 내용도 잘 모르면서 열심히 읽은 것처럼­

 

나의 이런 상태를 주위 사람들이 몰랐을 정도니 겉멋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가끔 조흔파의 ‘남궁동자’ 같은 명랑소설도 읽었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속 빈 강정 같은 생활이었지만 지나고 나니 그 모든 게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는다.

 

우리나라 최초의 클래식 음악감상실 르네상스

 

클래식을 알기 위해 종로에 있는 고전음악실 ‘르네상스’와 명동에 있던 ‘필하모닉’을 오갔다.

잠시 클래식에 빠져 청계천 리어카상에서 불법복제 레코드판(LP)인 ‘빽판’을 수시로 샀던 시절도 있었다.

돌이켜 보면, 그 당시에는 다른 형제들과 다른 나만의 세계에 빠졌던 것 같다.

사남매 중 차남이라 집안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위치에 있었기에 가능했다.

손목시계를 전당포에 맡기고 극장과 고전음악실을 다닐 수 있었으니...

그러다 가끔 종로 YWCA에서 친구들과 만나 커피를 마시며 시대를 한탄했고, 미래를 걱정했다.

 

 


춘천연극제에서 살롱연극을 만나다

 

카페휴 공연 장면  - 출처; 춘천연극제 홈피

 

세월은 유수와 같아 그 시절은 덧없이 망망대해로 흘러갔다.

이후 어쩌다 듣게 되는 ‘연극’은 나와는 무관한 것이었다.

 

그러다 다시 연극을 만나게 된 것은 2021 춘천연극제에 나온 살롱연극 ‘카페 휴’였다.

작년 10월 춘천시청 옆에 자리한 카페 올훼의 땅에서 본 살롱연극 ‘카페 휴’는 생경했다.

오래전 접했던 연극과는 사뭇 다른 전개에 당황스럽고 쑥스럽기도 했다.

 

 

나중에 살롱연극을 한 장소가 특별한 곳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카페 ‘올훼의 땅’은 오래전 카페 ‘바라’가 있던 곳이고, ‘바라’는 지난 1980~90년대에 정기적으로 살롱연극이 공연된 곳이었다고 한다.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지적인 대화를 나누며 관계를 맺는 공간을 뜻하는 살롱(Salon), 이미 오래 전부터 춘천에 있었고, 그 중심이 ‘바라’였던 것이다.

 

 


2022년 춘천이 웃는다!

대한민국 최고의 코미디 연극축제인 ‘COMEDY 춘천연극제’

 

(사)춘천연극제 주최 주관으로 오는 6월15일부터 10월30일까지 열립니다.

 

 

 

사족

명동예술극장장이었던 구자흥 선생은 “좋은 연극은 영혼을 맑게, 밝게, 아름답게 정화시켜준다”며

“21세기를 ‘문화의 세기’라고 부르는데 창의적 상상력, 통찰력의 훈련 교재로 연극만 한 장르가 흔치 않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나는 그 정도의 식견은 없으나 이즈음 연극은 다른 이들의 삶을 관조하고, 치열했던 일상에서 벗어나 삶을 여유롭게 한다는 데 행복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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