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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문화예술-6월 민주항쟁 35주년 기념식 문화제] “같이 한걸음”

by 피터와 나무늘보 2022. 6. 12.

 


‘6월 민주항쟁 35주년 기념식 문화제’를 다녀와서

2022년 6월 11일(토) 오후 6시 춘천시청 광장


 

강원민주재단이 주관한 ‘6월 민주항쟁 35주년 기념식 문화제’를 다녀왔습니다. 춘천시청 광장에서 오후 6시부터 시작하기로 한 행사는 다소 늦어져 6시 30분경에 시작됩니다. 이번 행사는 ‘같이 한걸음’을 주제로 6월 항쟁을 기념하며 민주주의 근본인 대화와 포용, 협력과 상생의 정신을 실천할 것을 다짐하는 등 민주주의 정신을 되새기는 자리였습니다.

 

이번 행사를 주관한 강원민주재단에서 준비한 화보집과 식순, 손부채, 그리고 생수와 떡. 특히 따끈따끈한 떡을 받아 든 순간 행사를 준비한 이들의 정성이 느껴졌습니다. 

 

행사가 시작되기 전 6월 항쟁과 미얀마 민주주의 항쟁, 우크라이나 전쟁 반대와 관련한 사진 전시회를 둘러봅니다.

  

행사 예정 순서와 달리 마임이스트 유진규 선생의 마임공연이 먼저 시작됩니다. 

이어서 시작 영상이 단상의 대형 모니터를 통해 전해지며, 기념식이 시작됩니다. 국민의례에 이어 묵념, 최윤 강원민주재단 이사장의 인사말이 있었습니다. 최윤 이사장은 인사말은 통해 당시의 상황을 명료하게 전해 쉽게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어 허영 국회의원의 축사가 이어집니다. 그리고 지난 6일 작고한 춘천 출신 정재돈 전 한국가톨릭농민회장의 추모식을 가졌습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에선 울컥하는 마음에 제대로 부르지 못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서울시청에 시위대의 한 사람으로 있었습니다. 

 

기념식에 끝나고 문화제가 시작됩니다.

 

국악인 유가람의 가야금병창이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이어서 김성호&길영우의 기타와 색소폰 연주와 노래가 이어집니다. 김성호의 노래가 이렇게 좋은 줄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개인적으론 ‘석사동 먹자골목’이 좋아 따로 녹음을 해뒀습니다.

 

어둠이 내리고 춘천시청 로고에 불이 들어옵니다.

 

 ‘호수를 닮은 사람들’의 공연이 이어집니다. 호담사는 춘천 시민연대 노래동아리입니다. 시민들과 함께 호흡하는 지역 유일의 민중가요 노래패로 이날 문화제의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립니다.  ‘아, 노래패가 저렇게 노래를 잘해도 되나’, 전문 가수들을 걱정해야 할 수준입니다. 시민들의 호응이 이를 반증합니다.

 

이어지는 이은미의 특별공연으로 문화제는 마무리됩니다. 맨발의 디바 이은미는 자신의 히트곡 녹턴애인 있어요외에도 공연 중간에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관객들과 함께 불러 큰 호응을 받았습니다.

 

관객석까지 내려와 일일이 인사하며 시민들과 함께 노래 부르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그 누가 뭐라 해도 이번 행사의 주인공은 시민들입니다. 저마다 뜨거운 가슴을 가지고 함께했습니다. 이번 기념식과 문화제를 기획하고 준비한 모든 관계자들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6월 민주항쟁’ 개요

호헌철폐! 독재타도! 민주쟁취!

 

‘6월 민주항쟁’은 1987년 6월, 전두환 정권에 맞서 전국에서 일어난 일련의 민주화운동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6월 항쟁, 6월 민주항쟁, 6월 민주화 운동, 6.10 항쟁 등의 이름으로도 불리기도 하는데, 보통 ‘6월 민주 항쟁’이나 약칭인 ‘6월 항쟁’이라고 불립니다.

 

1987년 4월, 전두환은 임기가 1년도 안되어 임기 중의 개헌이 불가능하니 현행 5공화국 헌법대로 차기 대통령 선거를 치르고 정권을 이양하겠다는 특별 담화로 대통령 간접 선거 조항을 사수하겠다는 의사를 밝힙니다. 이는 가뜩이나 대통령 직선제로의 개헌을 열망하던 사람들의 반발을 끌어냈습니다.

 

당시 대다수 국민은 직선제로의 복구를 민주주의 정치제도의 상징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이 선언을 계기로 제도권 야당과 재야 민주화 세력들은 연합전선을 구축하였고, 직선제 개헌을 쟁취하기 위한 국민운동본부를 창설합니다. 이로 말미암아 1979년 12.12 사태로 시작된 권위주의 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서구 수준의 자유민주주의가 쟁취되었습니다.

 

‘6월 항쟁’은 대통령 직선제를 비롯한 헌법과 정권의 개혁안을 발표하게 만든 사건으로 이후 한국사회에서 민주화와 자유화의 물결이 본격적으로 대두되었으며, 이 사건을 계기로 제정된 대한민국 헌법 9차 개정안이 지금까지도 1987년 체제라고 표현될 정도로 한국 정치, 법률 운영의 기초가 되고 있습니다.

 

다른 민주혁명과는 다르게 비교적 평화적인 시위로 군부 독재정권을 쫓아냈다는 점에서 세계적으로도 매우 높이 평가받는 시민항쟁입니다. 시민항쟁이 일어나면 대개 공권력의 폭력 남용에 의한 내란, 쿠데타, 폭동 등의 유혈 사태가 일어나는 경우가 많지만, ‘6월 항쟁’은 경찰과 시위대가 충돌할지언정, 전반적으로 치안은 양호했습니다. 당시 취재를 나선 외신 기자들도 이 점에 대해 놀라워했다고 합니다.

 

세계 민주주의 역사의 ‘민주주의의 확산’이라는 측면에서 ‘6월 항쟁’은 4.19 혁명, 5.18 민주화운동과 함께 시민들의 힘(People's Power)으로 민주화를 쟁취한 이른바 ‘3번째 민주화 열기’의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 참고; 나무위키 

 

 


사족

넥타이부대들도 나섰다

기념식장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할 때는 울컥하고 눈물이 나와 제대로 부르지 못합니다. 1987년 서울시청에서 사과탄이 터지던 모습이 오버랩됩니다. 당시 홍대 부근에 직장이 있던 저와 동료들은 최루가스를 조금이라도 버티기 위해 비닐랩, 마스크와 치약을 준비하고 트렁크에는 시위대에게 나눠줄 음료수를 박스째 싣고 시청으로 향했습니다. 민주화 쟁취를 위한 시민들의 저항은 눈물겨웠습니다. 당시 서울시청은 대형 나무문으로 되어 있었고, 그 문을 등에 기댄 채 울분을 토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오늘의 민주주의, 그냥 주어진 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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