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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와 산책

[산책-춘천풍물시장] 김유정, 춘천풍물시장에서 그림으로 피어나다

by 피터와 나무늘보 2022. 5. 17.

 


평범한 장보기를 위해 찾은 춘천 풍물시장

무심히 지나쳤던 곳에 ‘김유정’이 있었네


오늘은 화요일입니다. 2, 7일은 춘천 풍물시장에서 5일장이 열립니다. 그저 장보기 위해 다니는 곳이라 ‘5일장’이나 ‘풍물시장’의 특별함은 없습니다. 주말까지 먹을 파프리카와 브로콜리, 무를 장바구니에 담고, 오늘 저녁에는 갈치조림 아니면 오징어볶음을 해먹을 생각이었으나 마땅히 손이 가지 않아 자반고등어만 한 손 샀습니다. 요즘은 생고등어 보기가 참 어렵네요. 돌아오는 길, 참외 향기를 지나칠 수 없어 장바구니에 몇 개 담습니다.

 

 

평소 들어가지 않던 시장 옆 공영주차장은 평소와 달리 차량이 붐비지 않아 주차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예상보다 장보기는 일찍 끝났습니다. 트렁크에 짐을 싣고 기지개를 켭니다. 목과 어깨가 뻐근합니다. 나이 탓일까요. 내친김에 허리 돌리기를 하는데 눈에 들어오는 게 있습니다. 평소 그러려니 하고 지나쳤던 그림인데, 김유정의 작품을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춘천 풍물시장 위에는 경춘선이 지납니다. 그 아래는 원형 교각이 줄지어 있는데 교각마다 김유정의 문학작품이 그림으로 피어난 것입니다. 다행히 시간 여유가 있어 천천히 걸으며 그림 속에 빠져듭니다. 장날이라 그런지 천막을 친 곳이 많아 그림 중 일부는 가려져 있는 곳도 있습니다.

 

우리집 수탉을 괴롭히는 점순이
나에게 감자를 건네는 점순이
나의 거절에 점순이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짐
우리집 암탉에게 분풀이하는 점순이
점순이의 놀림에 분해하는 나
우리집 닭에게 고추장을 먹임
먼저 닭싸움을 붙이는 나
닭에게 억지로 고추장물을 먹이는 나
호드기를 불며 닭싸움을 시키는 점순이
점순이네 닭을 단매에 때려죽임
나를 달래는 점순이
동백꽃 속에 파묻힌 점순이와 나

 

 

김유정의 동백꽃

(1936년 5월, ‘조광’ 7호)

 

등장인물

: 소작인의 아들. 바보스러울 만큼 순박한 소년

점순 : 마름의 딸. 깜찍하고 활발한 성격

 

줄거리

오늘도 우리 수탉이 막 쫓기었다. 내가 점심을 먹고 나무를 하러 갈 양으로 나올 때였다. 산으로 올라서려니까, 등 뒤에서 푸드덕푸드덕하고 닭의 횃소리가 야단이다. 깜짝 놀라서 고개를 돌려 보니 아니나 다르랴, 두 놈이 또 얼리었다.

 

열일곱 살 난 ’나‘는 점순네 소작인의 아들이다. 우리 집 수탉은 점순네 수탉에게 물어뜯기고 피를 흘리기가 일쑤다. 점순이는 그것을 좋아해서인지 곧잘 싸움을 붙이곤 한다. 언젠가 점순이가 구운 감자 하나를 주기에 먹지 않겠다고 돌려주었더니 그 후부터 나보란 듯이 곧잘 닭싸움을 붙여서 약을 올리곤 하는 것이다.

 

나는 우리 수탉에게 고추장을 먹여서 점순네 수탉과 싸우게도 해 보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오늘도 내가 산에서 나무를 해 가지고 산중턱까지 내려오자니까, 또 점순이가 거기까지 와 닭싸움을 붙이고 있었다. 그녀는 천연스럽게 호드기를 불고 있었고 우리 집 수탉은 거의 빈사상태였다. 나는 골이 천둥같이 나서 그만 달려가서 막대기로 점순네 수탉을 때려눕혔다. 닭은 끽소리 못하고 푹 엎어진 채 죽고 말았다. 나는 겁에 질렸다. 왜냐 하면 점순네 집은 우리 집 마름이기 때문이다. 나는 기가 질려 울면서 점순이가 하자는 대로 하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점순이는 닭 걱정은 하지 말라면서 내 어깨를 짚고는 옆에 있는 동백나무 떨기들 사이에 넘어졌다. 그 판에 나도 겹쳐 넘어져 꽃 속에 파묻히고 말았다. 때마침 점순이 어머니의 점순이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있더니 요 아래서, “점순아! 점순아! 이년이 바느질하다 말구 어딜 갔어!” 하고 어딜 갔다 온 듯싶은 그 어머니가 역정이 대단히 났다. 점순이가 겁을 잔뜩 집어먹고 꽃 밑을 살금살금 기어서 산 아래로 내려간 다음, 나는 바위를 끼고 엉금엉금 기어서 산 위로 치빼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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