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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문화-속초시립박물관 실향민문화촌-1] 실향민문화촌, 그땐 그랬지...

by 피터와 나무늘보 2022. 6. 21.

 


6.25 전쟁으로 갈라진 이북 문화와 피난살이 문화 살필 수 있어

호롱불에 물지게 지고 살던 시절, 우리의 삶은 그렇게 이어져


 

어느 지역이나 박물관에 가면 미처 못 보던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박물관에는 우리의 역사가 있습니다. 속초시립박물관에는 1, 2, 3 전시실에서 속초의 역사와 미래를 볼 수 있습니다. 또 별도로 실향민문화촌과 발해역사관이 있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실향민문화촌에는 피난민들의 가옥과 생활도구를 통해 당시의 삶을 유추할 수 있게 조성되어 있습니다.

 

실감콘텐츠체험관 벽에 붙어 있는 ‘반공방첩’이란 구호가 낯설지 않게 다가오네요.

 

피난민 가옥은 관람객들의 편의를 위해 동선이 잘 구성되어 있으며 사진 촬영도 할 수 있습니다.

 

청호동 골목

청호동 ‘아바이 마을’은 한국전쟁 이후 월남한 실향민들이 모여 사는 마을입니다. 50년이 넘은 오래된 가옥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있는 작은 골목에는 50년대 초반 피난민의 고단함이 그대로 배어있습니다. 물자가 없어 판자, 깡통, 종이박스 등을 구해다가 만든 작은 부엌과 단칸방이 피난민에겐 전부였습니다. 공동주택은 거주민들의 증가로 주거 공간이 부족하게 되자 단체생활을 하는 어민들을 위해 생겨난 형태였습니다.

 

공동주택. 남북분단이 고착되면서 고향에 가지 못한 피난민들의 숫자는 점차 증가하게 되고, 거주 공간 또한 절대적으로 부족하게 되면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작은 규모의 집에 여러 개의 방을 이어 붙인 공동주택이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방과 부엌 사이의 작은 공간은 정주간(부엌과 방 사이에 벽이 없이 자리하는 온돌방)과 유사한 기능을 갖고 있으며, 주로 어로작업을 하는 어민들이 공동체 생활을 하였습니다.

 

당시의 주방 생활도구들이 현실감 있게 전시되어 있습니다. 

 

전상수 가옥. 방과 부엌 사이에 창고가 일자형으로 배치된 구조로 현재 청호동 아바이 마을에 원형이 일부 남아있다고 합니다. 방과 부엌 사이의 창고는 함경도 정주간과 유사한 기능을 갖고 있어 고향의 생활양식이 전승된 가옥 구조를 보이고 있습니다. 부엌은 밥을 짓기 위한 도구와 물품 보관을 위한 아주 최소한의 공간으로 만들어졌고, 아주 작은 방에 여러 식구가 모여 살았던 겨울 생활 모습을 재현한 것입니다.

 

삶을 위한 당시 실향민들의 어업 풍경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당시 미군정과 속초사람들의 모습을 안내문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공동주택. 대다수의 피난민들은 가족을 두고 혼자서 생활해야 했고, 몇 사람이 모이면 함께 공동체를 이루며 생활했다고 합니다. 이런 조건에서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있는 넓은 방과 극히 필요한 면적의 부엌만을 만들었는데, 이러한 가옥은 공공작업을 하는 어민들이 주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양담배 연기속에 사라지는 6십억환’ 표어를 통해 당시의 상황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인구절벽’에 있는 지금의 상황과는 전혀 다른 ‘내일이면 늦으리 막아보자 인구폭발!’이란 포스터가 눈길을 멈추게 합니다.

 

재봉틀과 침구가 놓여있는 방의 모습. ‘맨발의 청춘’이라는 영화 포스터가 있네요.

 

박송월 가옥. 가족이 늘어남에 따라 기존의 집에 방을 연결하는 방법으로 확장한 구조로, 길게 연결된 각 방과 작은 부엌은 정착생활 모습을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현재 박송월 가옥은 원형 그대로 청호동 아바이 마을에 남아있으며, 여름철 생활모습을 재현한 것입니다.

 

실향민 망향동산. ‘가려고 해도 갈 수 없고, 오려고 해도 올 수 없네’ 실향민들의 한스러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실향민문화촌에서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이 실감 콘텐츠 체험관’인데 문이 닫혀 있어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이곳은 실향민들의 삶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재현한 속초역사

속초시 동명동 450-195번지에 있었던 프랑스식 고깔형 건축 구조의 건물로 1978년 철거되기까지 37년간 우리나라 근현대사와 운명을 함께 했습니다. 1941년 동해북부선(원산~양양)이 지나는 역사의 하나로 세워졌는데 동해북부선은 일제가 양양의 철광석을 군사기지였던 원산으로 수송하려는 제국주의적 수탈의 목적에서 건설한 철도였습니다.

해방 이후 속초역사는 38선 이북지역에 속해 북한의 통제 하에 있었으며, 1950년 한국전쟁 중에 대규모 폭격으로 철로가 파괴되어 역사의 기능이 중단되었으며, 국군이 북진할 때는 화장장으로 이용되기도 했습니다. 1951년 8월부터 1954년 11월까지 속초지역에는 미군정이 실시되었는데, 당시 속초역사는 미군 항만사령부의 취사장과 댄스홀로 사용되었습니다. 1957년부터는 벽돌공장인 고려산업사가 입주한 이후 동해북부선 역사 가운데 가장 오랫동안 남아 있었던 속초역사는 1978년 4월 10일에 철거되었습니다.

 

 

 

 

사족

이날 따라 선크림도 바르지 않고 햇빛 속을 헤집고 다녔습니다. 땀이 비 오듯 하지만 개의치 않고 실향민문화촌의 이모저모를 살피는 데 정신이 없었습니다. 어쩌면 그들의 삶 속에서 저를 찾고자 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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