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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문화-연극 이장(移葬)] 2022춘천연극제 초청작

by 피터와 나무늘보 2022. 7. 3.

 


이장(移葬)


 

먹먹해지는 순간, 순간들. 그리고 가슴 저린 슬픔과 눈물

문제 많은 3남매와 어머니의 고단한 삶 인간적으로 그려

 

 

이왕이면 오후 3시 첫 공연을 볼 계획이었으나 잡무로 인해 시간을 낼 수 없는 상황입니다. 서둘러 일을 마치고 저녁 7시 30분 공연을 보기 위해 봄내극장으로 향합니다. 해가 많이 길어졌습니다. 저녁 햇살이 언덕 위에 있는 봄내극장을 비추고 있습니다.

 

 

오늘 볼 연극은 ‘이장(移葬)’입니다. 기대되는 것은 박근형 연출가의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박근형 연출가는 연극 ‘청춘예찬’을 만든 작가로도 유명하죠. 그 작품을 통해 배우 박해일이 탄생했다고 합니다.  

 

 

연극 ‘이장’은 아버지의 산소에 물이 차서 이장해야 한다는 삼촌의 이야기를 듣고서 흩어져 살던 가족이 모여 회의하는 모습으로 시작됩니다. 독립해서 잘 살아야 할 나이지만, 여전히 본인 앞가림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3남매와 어머니가 주인공입니다.

 

 

어머니의 아픔과 두 아들

어머니 집에 얹혀사는 큰아들은 피자가게를 운영했으나 주방장과 바람난 부인과 이혼하면서 위자료로 가게와 아파트, 차까지 몽땅 날립니다. 오토바이 배달을 하는 작은 아들은 생계를 맡고 있는 아내에게 늘 기가 죽어지냅니다. 늙은 어머니는 밤마다 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면서 앓고 있습니다. 젊은 시절, 자기 멋대로 살다 간 남편 때문에 녹록지 않았던 그녀의 삶은 그 이후로도 나아진 게 없습니다. 북에 두고 온 고향, 부모, 전쟁 한 복판에서 죽은 오빠들, 그리고 밉지만 미워할 수 없는 남편에 대한 기억들이 그녀의 작고 구부러진 몸 안에 배어 있습니다. 죽어가는 몸, 그 몸에 담긴 기억들. 그러나 자기 하나조차 제대로 버틸 수 없는 두 아들은 어머니의 아픔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사위에게 돈 빌려 아들 로또 지원

큰아들이 안쓰러운 어머니는 외국인 사위를 졸라 몇 푼의 돈을 빌려 큰아들에게 쥐어주곤 합니다. 큰아들은 이런 자신의 처지가 못내 자존심이 상하고 짜증 나지만, 그렇다고 마땅한 대안도 없습니다. 어머니에게 돈을 받은 그가 달려가는 곳은 로또가게입니다. 일확천금밖엔 그의 삶에 답이 없습니다. 어머니 역시 그것을 알기에 큰아들에게 돈을 쥐어줄 때마다 힘껏 응원합니다. 그 간절함이 덩달아 자기가 로또에 당첨되는 꿈으로 이어집니다. 큰아들의 빈 가방에는 그가 언젠가 일용직 노동을 할 때 썼던 망치가 들어있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꺼내 쓸 수 있을 테지만, 노동의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족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막내딸의 몸부림

어머니의 생계를 책임지는 건 막내딸입니다. 하지만 막내딸은 가족으로서 최소한의, 정말 최소한의 도리만 합니다. 이 지긋지긋한 가족의 굴레에 빠져 허우적거릴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습니다. 그녀가 많은 직업 중 항공기 승무원을 직업으로 택한 것도 가족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남긴 답 없는 삶 속에 빠져 아버지와 또 다른 의미에서 무능하게 살아가고 있는 오빠들의 나라에서 죽어도 살기 싫은 것입니다. 아버지가 너무 싫어서, 오빠들이 너무 싫어서, 아니 이 땅의 남자들이 너무 싫어서 남편도 브라질계 한인을 택한 것입니다.

 

불분명한 이장의 이유와 자식들의 무능

작은 아버지는 문득문득 찾아와 죽은 그들의 아버지를 ‘이장’시켜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작은 아버지의 말을 잘 들어보면 아버지가 정확히 어디에 묻혔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처음에는 일산에 묻혔다고 하고, 나중에는 용인에 묻혔다고 하는 등 정확히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는 사이 그들의 기억도 점차 증발되어버립니다. 작은 아버지는 번번이 이장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가 말하는 이장의 이유도 그때그때 다릅니다. 묘지에 물이 차서라고 했다가 공공택지로 지정되어서라고 하기도 하고... 하지만 문제는 자식인 그들이 죽은 아버지를 이장시킬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왠지 믿음이 가지 않는 작은 아버지

자식들은 ‘작은 아버지가 알아서 하겠다’고 했으니 그냥 믿고 맡기기로 합니다. 그런데 왠지 작은 아버지에게는 믿음이 가지 않습니다. 부동산업을 해서 돈은 있어 보이지만 가난한 형수는 물론이고 조카들에게 인색하기 짝이 없습니다. 편의점 커피를 좋아하는 것이 취향이라니... 형수에게 건네는 건 바나나 우유가 전부입니다. 이장 문제로 얘기할 게 있다며 조카들을 불러낼 때도 카페가 아닌 길거리에서 만나자고 합니다. 조카들에게 건네는 캔커피도 아들을 시켜 편의점에서 사 온 것입니다.

 

큰아들의 불안과 절망이 폭발하고

이제 큰아들은 어머니의 한숨 섞인 푸념을 들어주고 싶지 않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는 그동안 자기가 들었던 소리가 알고 보니 옆집에서 죽어가는 한 청년이 살려 달라고 내지르는 비명이었다며 안타까워합니다. 하지만 큰아들은 무시합니다. 자기 역시 그 못지않게 죽을 지경이니까요. 순간, 그는 가방에 넣어두었던 망치를 꺼내 사방의 벽을 부서져라 두드립니다. 살려달라고, 나도 살려달라고, 아니 살게 해 달라고... 그의 불안과 절망이 폭발하는 순간입니다.

 

어머니의 소원 듣고 더 슬퍼져

어머니는 아들의 돌발행동에 혼란스럽습니다. 가슴이 아프고 슬픕니다.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자신이 사랑했건, 미워했건 자기 삶을 거쳐 간 모든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 합니다. 그들과 함께 모여 고기도 굽고 전도 부쳐 나눠먹으며 노래하고 춤추며 한을 푸는 것이 소원이라며 아련한 감정에 빠집니다. 큰아들은 그런 어머니가 안타깝고 불쌍합니다. 자식으로서 일말의 죄책감도 느낍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아프고 슬픈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먹먹해져

어머니는 낡은 침대에 웅크린 채 잠자듯 세상을 떠납니다. 끝까지 고된 그녀의 삶도 애잔하지만, 문득 우리네의 삶이 오버랩되며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검은 상복을 입고 죽은 어머니의 옆에 선 가족들... 무엇이 문제이고, 어디부터 잘못되었는지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 내용의 일부는 이경미 연극평론가의 글을 참고했습니다.

 

 

 

사족

무거움 나누고 싶지 않아...

막이 내리고 먹먹한 가슴을 쓸어내릴 때, 친숙한 음성의 노래가 마치 옆에서 속삭이듯 들립니다. 그렇게 김민기의 노래 ‘바다’는 슬픔을 한 겹 더 쌓아줍니다. 가볍고, 경쾌하고, 때론 유쾌한 공연만 보다가 오늘 본 ‘이장’은 많은 걸 느끼게 합니다. 객석 맨 뒤에서 봐서 일까요. 앞과 옆자리에서 들리는 한숨과 절망이 순간 나락으로 빠지게 합니다. 상복을 입고 나타나는 배우들의 굳은 표정은 일순 공연장을 우울함에 빠지게도 합니다. 어머니 역을 맡은 강지은 배우가 무대 인사를 하며 눈시울을 붉힐 때, 저 역시 가슴이 먹먹하고 눈가가 촉촉해집니다. 우리네 얘기, 제 얘기이기도 할 테니까요.

김민기의 ‘바다’와 박근형 연출가

춘천연극제 사무국장께 가수는 알겠는데 곡명이 생각나지 않는다고 했더니 연출선생님을 소개해주시네요. 박근형 연출가는 “아, 그 노래. 김민기 선생의 바다입니다”라며 밝게 맞아주시네요. 고마운 순간입니다. 이번 연극  ‘이장’은 극단 골목길(대표 이호열,  ‘이장’ 둘째 아들 역) 작품입니다.  

2022춘천연극제 초청작을 기대하며

2022춘천연극제는 ‘이장’을 시작으로 총 5편의 초청작을 선보인다고 합니다. 통영 벅수골 극단의 ‘퓨전, 사랑소리나다’, 부산 동녘 극단의 ‘가을, 반딧불이’, 춘천 사회적협동조합 무하의 ‘트루웨스트를 꿈꾸며’, 강원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마주보는 집’이 그것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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