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1 cut, 1 story

[1컷-수박화채] 음식은 세월 따라 진화한다지만...

by 피터와 나무늘보 2022. 6. 13.

 


설탕과 수박화채, 그리고 아련한 옛 추억의 그림자


 

‘설탕국수’라는 말을 듣고 처음엔 그게 뭐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알고 보니 말 그대로 삶은 면에 설탕만 넣어 먹는 것이었습니다. 설탕이 들어간 거라는 단순한 이름인데도 의아해했다는 것은 ‘국수에 설탕만 넣어 먹을 리 없다’는 선입관이 작용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래전 대청마루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수박화채를 먹던 때가 생각납니다. 여름철이면 가게에서 사 온 얼음에 바늘을 대고 작은 망치로 톡톡 치면 얼음이 제멋대로 쪼개져 수박화채를 시원하게 하는 재료가 되었지요. 그뿐인가요. 조그만 얼음조각을 사탕 물 듯 입안에 넣고 녹여먹기도 했습니다.

 

당시의 수박화채에 들어간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설탕이었습니다. 수박 속은 숟갈로 일일이 떠내 커다란 양푼에 담았는데, 한 가족이 먹기에는 부족했던지 일정량의 물까지 넣었습니다. 아무리 달콤한 수박이라도 밍밍해질 수밖에 없죠. 해서 설탕이 들어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요즘의 수박화채는 우유, 사이다, 꿀 등 여러 가지를 넣는데 당시에는 오직 설탕뿐이었죠.

 

잘 익은 수박은 부엌칼을 대기만 해도 “쩍~” 소리를 내며 갈라집니다. 그리고 드러난 새빨간 속살, 가족들은 “우와~ 잘 익었네”라며 환호성을 지릅니다. 수박을 사 온 형은 잠시 영웅처럼 우쭐거려도 탓하지 않습니다.

 

좋은 수박 고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쉬운 것이 중지로 꿀밤을 때리는 것처럼 수박을 두드려 보는 겁니다. 잘 익은 수박일수록 “통통” 소리가 납니다. 덜 익은 수박은 “퉁퉁”거리며 둔탁한 소리가 납니다. 그렇습니다. “통통”거리며 맑은 소리가 나는 것을 고르시면 됩니다. 하지만 요즘은 대부분 잘 익은 수박만 출하되기에 걱정은 안 해도 됩니다.

 

설탕이 들어간 수박화채, 온 가족이 둘러앉아 한여름의 무더위를 씻어내던 시절은 이제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마트에는 철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크기의 수박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아무래도 제철에만 먹던 습관 때문인지 지금도 여름이 되어야 몸이 반응합니다. 곧 무더위와 폭염주의보가 이어질 것입니다. 얼음을 깨어 넣은 그 시절의 수박화채를 기다리는 것은 저뿐만이 아니겠지요.

 

 

사족

노각은 가라! 수박껍질무침의 놀라운 맛

한여름이 되면 늙은 오이인 ‘노각’이 등장합니다. 빛이 누렇게 된 오이라는 뜻의 황과(黃瓜)로도 부릅니다. 익으면 진노란색 겉껍질에 그물 모양이 고르게 나타나며, 풋오이보다 껍질이 거칠고 조직에 수분이 적어 단단합니다. 이것으로 생채를 해서 먹는데 밥을 비벼 먹으면 맛있습니다. 장아찌나 김치를 담기도 하지만 대개는 생채 무침을 해서 먹습니다. 그런데 저는 수박껍질을 이용한 생채 무침도 좋아합니다. 수박껍질을 먹는다고? 그럼요. 쫄깃한 식감에 수박 고유의 향까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맛있는 음식입니다. 수박을 다 먹고 남은 껍질의 겉껍질과 안쪽의 붉은 부분을 제거하고 맑은 부분만 채를 크게 썰어 소금에 살짝 절인 후 고추장을 베이스로 한 무침을 하면 그 맛이 일품입니다. 얼마나 먹을 게 없으면 수박껍질을... 그런 고정관념이 있다면 지금 버리세요. 얼마나 먹을 게 없으면 달팽이를, 제비집을... 하지만 그런 건 없어서 못 먹죠. 수박껍질 무침, 이번 여름에 도전해보시기 바랍니다. “끝!”

댓글